YUI-PORT AIR Invitation Program 2025 Spring YUI-PORT Gallery 1
- Residency Period: April 8 – June 28, 2025 - Workshop: June 1, 2025 - Exhibition: June 15 – 25, 2025
한국에서 진행해오던 〈마음의 집〉 프로젝트를 확장하며, 이번 일본 니가타현에서는 ‘집’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개인적인 가족사나 기억에 국한시키지 않고, 집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다시 그것이 공동체적 서사와 존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이는 장소로 이어지는 구조로 탐구하였다.
철거 예정이었던 두 채의 빈집—니가타현 야히코무라의 단층집과 산조시의 오래된 2층 목조가옥—을 방문하여, 그 공간에 남겨진 기억과 감각적인 흔적을 3D 데이터와 사진 자료로 채집하였다. 동시에, 그 장소에서 받은 감각적 인상과 정서적 반응을 바탕으로 사운드,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전개하였다.
이 체재를 통해 사라져가는 공간을 단순히 보존하거나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그 안에 깃들었던 기억, 소리, 움직임의 흔적을 새로운 생명력을 지닌 조형 언어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빈집’에 대한 사유는 ‘집’에 대한 사유로부터 출발한다. 집을 ‘집’으로 만드는 필요충분조건은
바로 생명이다. 생명이 거하지 않는 집은 더 이상 집이라고 불리지 못하고 대신 ‘빈집’이 된다. 빈집은 ‘비어있음’의 상태, 그 자체로 결핍이자 미완성의 공간이다. 생명 없이 비어있기
때문에 완성된 하나의 집이 될 수 없다. 이처럼 공허한 결핍의 장소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채워지길 바라거나, 어쩔 수 없이 허물어지길 기다린다. 다시 채워지거나 허물어지거나의 기로에서, 뜻밖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도 한다.
한때 누군가의 포근한 안식처이자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고, 또 슬픔과 행복의 다채로운 추억이 깃든 집에서 생명이 떠나감과 동시에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바로 소리였다. 물건은 남고,
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크루즈선 달력과 사진, 휠체어와 의자의 흔적은 남았으나 소리는 발화의 순간, 역동의 순간 발생했다 금세 사라져버렸다. 이처럼 소리는 살아있음, 생명 있음의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때문에 소리를 복원하려는 시도는 곧 생명력을 상실한 공간을 다시 살아있는 삶의 현장으로
재탄생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오래전 소리와 온기를 잃고 비어버린 상태로 방치된
장소를 2025년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사람은 떠났어도 집은 남았고, 소리는 사라졌어도 달력과 사진, 삶의 흔적은 곳곳에 남았기에, 우리는 그곳을 걷고, 보고, 냄새를
맡고, 온몸으로 느끼며 장소에 새겨진 지나간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
장소는 그렇게 시간을 초월해 그저 묵묵히 남아있음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잇는 창조적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한편 오랫동안 비어있던 공간을 살아있는 유기체이자 생명체인 식물로 환원시킨 조용현 작가의 상상력은 오래된 장소에 켜켜이 쌓인 기억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소한 흔적, 아무렇게나 방치된 조그마한 조각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스토리텔링은 미처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던 장소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렇게 조용하지만
그 누구보다 강인한 생존력을 지닌 생명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시간의 조각〉, 2025, 폴라로이드 프린트, 가변크기
“Fragments of Time”, 2025, Polaroid Prints, Variable Dimensions
3D 스캔이라는 첨단 기술로 포착한 공간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오래된 폴라로이드 필름이라는 아날로그 매체로 인화한 작업이다. 시간과 매체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이 시도는, 디지털로 저장된 무형의 공간을 손에 잡히는 감각적 물성으로 재탄생시키며, 파편화된 기억의 불확실성과 물리적 흔적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 잊힘과 보존, 기술과 감성 사이의 새로운 대화를 시도한다.
“Blood Score”, 2025,
Multi-display Media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피의 악보〉는 작가 자신의 가계도를 바탕으로 한 설치 작업으로, 전통적인 가계도 표기법을 시각 언어와 추상적 모션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사각형과 원형의 디스플레이는 각각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며, 그 안에서 전개되는 움직임은 병, 사망, 단절 등 무거운 개인의 서사를 리듬화해 표현한다. 이 구성은 단순한 그래픽 배열처럼 보이지만, 해독 가능한 기호 체계로 작동하며, ‘읽혀야만 연주될 수 있는 악보’와 같은 구조를 따른다. 디스플레이를 잇는 붉은 선은 세대를 관통하는 유전과 혈연의 흐름을 상징하며, 보이지 않는 연결의 맥락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Bloom Again”,
2025, Single Channel Video, Stereo Sound, 3' 36"
〈다시 피어나다〉는 철거 예정이었던 두 채의 빈집에서 받은 감각적 인상과 정서적 반응을 바탕으로, 사라진 공간을 가상의 식물로 환원한 영상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공간의 사실성보다는 현장에서 경험한 정서적 반응에 따라 식물의 형상을 상상하고 설계하였다.
첫 번째 집은 조부모가 거주하던 작은 주택으로,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바닥 유리와 크루즈선 달력, 배를 탄 사진 등에서 물과 여정의 이미지를 받았고, 이에 따라 해양생물과 수생식물을 연상시키는 식물이 등장한다.
두 번째 집은 넓고 오래된 목조 가옥으로, 공간의 규모와 무게감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형상이 발현되었다.
이 영상은 설치작품 〈피의 악보〉를 투과해 프로젝션되는 방식으로 상영되며, 사라진 장소의 감각이 또 다른 생명 형태로 전이되어 자라고 남는다는 상상을 시각화한다.
식별 코드 DP-001.YHK:LotusFish
발견지 니가타현 야히코무라·약 70년 된 단층집
분류 수생 환상종
형태적 특징 반투명한 유리판 아래, 연못의 기억으로부터 돋아나는 식물. 이 식물은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휘며 움직이는 몸체와, 그 위에 자리한 연꽃이 피어난다.
마치 물속을 유영하듯 천천히 공간을 가로지르며, 주변을 감지하듯 움직인다.
가느다란 촉수형 돌기는 천천히 회전하거나 떨리며, 미세한 진동을 흡수하고 다시 공간에 발산한다.
개화 시에는 수면을 따라 연꽃이 조용히 피어오른다.
감각적 기원 이 식물은 ‘시간의 수면 위를 부유하는 감정들’로부터 자라난다.
해양적 이미지를 품은 공간의 기억, 어린 손자의 활력과 정적 사이의 간극이 식물의 수형 안에 겹겹이 보존된다.
서식 환경 낮은 채광·바람이 잔잔히 드는 구조·물의 기척이 남아 있는 장소
식별 코드 DP-002.SJS:Root
발견지 니가타현 산조시·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목조 가옥 (쇼와 8년 증축)
분류 심층 목근 환상종
형태적 특징 굵고 중첩된 줄기 구조는 나무이면서도 건축물 같으며,
각 층은 오래된 마루, 벽, 문서 뭉치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중심부에는 균열이 난 듯 벌어진 공간이 있고, 그 안에서 은은한 빛과 저주파의 진동이 흐른다.
이 부분은 식물의 심장에 해당하며,
수세대에 걸친 감정의 압축 지점이자,
억눌린 목소리들이 다시 진동으로 되살아나는 장소이다.
그 심장은 규칙적인 맥박이 아니라,
무거운 시간의 틈에서 간헐적으로 울리는 숨소리 같은 파동을 낸다.
줄기 또는 몸체는 마치 바닥의 휠체어 자국처럼 깊은 홈을 지니고,
가지처럼 뻗은 구조는 방마다 다른 시대가 공존했던 공간처럼 방향이 일정하지 않으며, 사방으로 무겁게 퍼져나간다. 움직임은 거의 정지에 가깝고, 전체 형상은 중력에 끌리는 듯한 기울어짐과 뒤틀림을 지닌다.
기억의 단서 휠체어 자국·이동한 의자의 흔적·고문서·글을 쓰는 공간·각기 다른 시대를 보여주는 방의 구조
감각적 기원 이 식물은 ‘축적된 세대 감정의 무게’로부터 성장한다.
한 공간에 겹겹이 쌓인 권위, 복종, 침묵, 해방의 감정들이 뿌리를 내려 무거운 형상으로 응축된다.
이는 생명이라기보다, 감정의 퇴적물에서 솟아난 형체에 가깝다.
〈축적된 기억〉은 일본 산조시의 빈집에서 가져온 정사각형 다다미 위에 설치된 사운드 작업이다. 세 개의 스피커는 다다미 위 공중에 떠 있는 듯이 설치되어 서로 다른 사운드를 재생하며, 소리는 다다미 표면에 스며들 듯이 퍼진다. 작가에게 다다미는 일본 주택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일상의 대부분이 오가며 닿는 ‘살아 있는 바닥’이다. 이 작품은 그 위에서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소리들을 상상하고 재구성한 사운드 조각들로 구성되며, 구체적인 사건 없이도 지나간 시간의 밀도와 감각을 응축된 형태로 환기한다.
다다미가 축적된 삶의 층위를 기억하는 표면이라면, 이 작품은 그 기억의 잔향을 소리로 되살리고, 공중에서 떨어지는 섬세한 진동을 통해 조용한 대화를 건넨다. 과거와 현재, 잊힘과 보존, 물성과 감각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사운드로 탐색하는 시도이다.